2007년 4월 1일 읽음.
그날 연주된 것은 마침 '전원교향악'이었다.
내가 '마침'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듯이 이 작품만큼 그녀에게 들려주고 싶은 음악은 없었기 때문이다.
연주회 장을 나온 뒤에도 제르트뤼드는 오랫동안 말없이 황홀경에 잠겨 있었다.
"목사님이 보고 계신 세계는 정말 그렇게 아름다운가요?"
그녀는 마침내 이렇게 물었다.
.....
주여, 당신이 밤을 이토록 깊고 이토록 아름다운 것으로 마련하신 것은 저희들을 위해서입니까, 아니면 저를 위해서입니까? 대기는 따뜻하고 열어 젖힌 들창으로는 달빛이 새어 들어오고 있으며, 저는 하늘의 드넓은 정적에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오오, 남김없이 온전한 천지 창조에 대해 저는 오직 착잡한 숭배를 드리고 있을 뿐입니다. 제 마음은 그지없이 황홀하여 그 안에 녹아들어 갈 뿐입니다. 이제 저는 정신없이 기도를 드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에 혹시 한계가 있다면, 신이여, 그것은 당신의 탓이 아니고 인간의 탓인 것입니다. 저의 사랑이 설령 인간의 눈에는 죄가 있는 것으로 보일지언정, 오오, 하느님이시여! 당신의 눈에는 성스러운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
"목사님이 눈을 뜨게 해주셨을 때, 내 눈에는 내가 그러리라고 꿈꾸고 있었던 것보다 훨씬 아름다운 세계가 펼쳐졌어요. 정말 그래요. 햇빛이 이토록 밝고, 대기가 이토록 빛나고, 하늘이 이렇듯 넓으리라곤 미처 상상조차 못했었어요. 그리고 한편 사람의 이마가 두드러진 뼈에 이토록 근심을 띠고 있으리라고도 짐작 못했었죠. 내가 목사님 집에 들어갔을 때,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이 뭔지 아세요? 아아! 하지만 아무래도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군요. 제가 제일 먼저 본 것은 우리들의 잘못, 우리의 죄였어요. 아뇨. 반대하지 말아 주세요. 그리스도의 다음 말씀을 기억해주세요. '장님이라면 네가 오히려 죄가 없으리라' 말이에요. "
[ 앙드레 지드 - 전원교향악 中 에서]
비록 더럽고 추한 것들을 보기 싫다 하더라도 이른 아침 창가로 비추어오는 따사로운 햇살을 볼 수 없다면, 깊은 새벽 밤하늘에 수놓은 별무리들을 볼 수 없다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눈을 마주보면서 내 마음을 전할 수 없다면, 상대방의 눈에 비친 감정의 빛을 느낄 수 조차 없다면...
내게 눈이 없다면이라는 가정은 해 본적이 없다. 하지만 그렇다면 정말, 정말 슬프겠지?
눈먼 한 소녀에게 비친 이 세상은 전원교향악에서 느낀 바로 그것이었다. 내면이 가진 눈이 바라보는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웠던가. 하지만 눈을 뜨게 된 후에 바라본 이 세상이 소녀에게 보여준 것은 죄악이었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이 세상은 그만큼의 거짓된, 추악한 면들을 많이 반영하고 있는 듯하다.
처음 눈뜬 자에게 보였던 이 세상의 모습이 죄였다니.
내가 남에게 추한 모습이 아니기를, 내가 남의 눈에 보이는 죄가 아니기를..
죄악이 난무하는 세상..
하지만 바라볼 수 있는 눈이 있어 내게 소중한 것들을 바라볼 수 있음에 오늘도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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